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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Information > 침뜸연구
 
작성일 : 12-07-25 14:52
세상에 이런일이!!
 글쓴이 : 월하선…
조회 : 25,971  

고압선에 팔다리를 다 내주고, 34년 동안 인간의 한계와 치열하게 싸우며 산 전성무 씨. 죽으려 해도 죽을 수 없고, 수시로 찾아오는 환상통이 그를 괴롭혔지만 구당 선생의 무극보양뜸을 뜨면서 건강한 인생을 되찾았고, 아내도 병원 출입을 끊었다. 때문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전성무, 최우정 부부다.


 


“팔다리가 없어도 아내가 있고, 뜸이 있어 축복받은 인생입니다”


구당 김남수 선생께서 직접 전북 김제로 내달렸다. 팔다리가 없으면서도 뜸을 떠 기력을 유지하고 사는 전성무(59) 씨를 만나기 위해서다. 팔다리가 없는 전 씨의 소원이 “구당 선생님께서 아내의 뜸자리 한 번 잡아 주는 것”이라는 얘기를 전해 듣고 한달음에 이들 부부에게 달려간 것. 이들의 손을 꼭 쥐어 주며 등을 토닥거리는 98세 노 침구사의 눈자위가 붉어진다. “애썼구나, 참으로 애썼어…….” 잠시 침묵이 흐르고, 동행한 취재진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멀쩡했던 팔다리를 고압선에 내주고 중도 지체장애인으로 34년을 살아온 전성무 씨.

이런 그를 연애 중이던 아내가 도망치지 않고, 친가(親家)와 시가(媤家) 모두가 헤어지라 종용했지만 그를 지켜냈다. 그렇지만 많이 아팠다. 그런데 이 부부가 뜸을 떠 건강을 되찾은 것이다. 이 부부가 사는 모습을 지면에 담는다. (편집자 주)


맛있는 식사를 ‘뜸 밥’으로 즐긴다
어둠을 밀어내고 창밖에는 밝은 빛이 자리잡기 시작한다. 만물이 눈을 뜨는 그 시각. 전라북도 김제시 옥산동의 한 아파트에서 보통사람들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벌어진다. 팔과 다리가 없는(한쪽 다리는 약간 남아 있으나 전혀 구실을 못한다) 1급(A급) 지체장애인 전성무(田成茂 59) 씨가 아내에게 밥을 주기 시작한다. 아내의 말을 빌리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이란다. 그것도 숟가락이 핀셋이고, 선향(線香)이 젓가락이 되는 밥이다.

전 씨가 아내에게 밥을 주는 방법을 살펴보자(기본적인 기구를 챙기는 것은 아내의 몫).
① 먼저 뜸자리에 혀를 쑥 내밀어 침을 묻히고 ② 입에 핀셋을 문다. ③ 접시에 담긴 반미립대(半米粒大 쌀알 반 크기) 뜸봉을 날렵하게 집어 뜸자리에 살짝 얹어 놓는다. ④ 그리고 불이 빨갛게 달구어진 선향을 입에 물고 ⑤ 뜸봉에 불을 붙인다. ⑥ 입으로 탈지면(혹은 휴지)을 물고 뜸자리를 닦아 준다.




폐유와 고황을 지나 신유와 간유로, 돌아누운 아내에게 중완과 중극, 수도를 거쳐 곡지, 족삼리를 지나 백회까지 뜸을 뜨는 실력이 정확하기가 백발백중이요, 움직임은 마치 곡예사의 날렵함과 견주어도 모자람이 없다. 이렇게 전신을 터치하고 혀로 핥아 정성스레 뜸을 다 뜨고 나면  맛있는 식사도 함께 끝이 난다.

이번에는 남편이 자리에 눕고 아내가 뜸을 정성껏 뜬다. 깨끗한 피부에 뜸자리가 선명하다. 곡지도 없고, 족삼리도 없어 뜸뜨는 시간이 훨씬 단축된다. 서로에게 뜸을 떠 주는 행사(그들은 그렇게 부른다)가 끝나면 둘이는 마주 보며 씩 웃는다.

숟가락이 핀셋이고, 선향이 젓가락
아내에게 처음 뜸을 떠 줄 때는 실수투성이였다. 핀셋을 입으로 오므리기가 쉽지 않았고, 조심해서 핀셋에 물린 뜸이 떨어지는 것은 다반사였다. 뜸봉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불이 붙은 선향이 엉뚱하게도 피부로 직접 향하여 민망한 적이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그러나 4년이 흐른 지금은 리듬을 타고, 또 그것을 즐기는 여유가 생겼다.

“맛이 있어? 매일 먹는데도 그렇게 맛이 좋아?”
“그럼,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이야. 나는 밥은 안 먹어도 뜸 밥 안 먹고는 못살지.”
“하기사, 나도 뜸을 떠야 몸에 열도 내리고, 기력이 있어. 얼매나 좋은지 모르겄어. 참으로 뜸을 알게 된 것은 우리에게는 축복이랑게.”
이들이 다정하게 얘기하는 ‘뜸 밥’이 무엇인가. 바로 뜸이 ‘뜸 밥’이다. 접시에 가득하게 아내가 말아 놓은 반미립대 뜸이다.

침뜸요법사와의 인연
뜸과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인연은 1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남편의 근무지를 따라 김제에서 살게 된 이옥희(뜸사랑 침뜸요법사 5기) 씨를 아내 최우정(57) 씨가 만나면서다. 우울증 등으로 고생하던 최 씨가 단전호흡을 하면서 알게 된 이 씨와 가깝게 지냈으나 당시는 서로가 뜸을 몰랐다.

한참의 세월이 흐른 뒤 최 씨가 이 씨에게 안부전화를 하게 되고, 이 씨가 그런 최 씨에게 구당 선생에게서 배운 뜸 요법을 자신있게 권하였다. 이로써 전성무, 최우정 씨 부부는 뜸사랑 지부에서 뜸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때가 2009년 1월 5일 월요일. 이로부터 4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이들은 뜸으로 맛있는 식사를 즐기는 것이다.

“당시에는 아내가 정신적,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어했습니다. 물론 아내가 이렇게 많이 아프게 된 것은 저 때문이었지요. 대부분의 말을 욕(辱)으로 하던 시절이었으니 오죽했겠습니까? 우울증은 점점 심해지고, 공황장애에 갑상선기능저하증까지. 거기다가 몸은 얼마나 찬지 한여름에도 따뜻한 물로 세수를 하고, 냉장고 안의 음식은 아예 입에 대지도 못했습니다. 나로 인해 아내의 몸에 생긴 여러 병마에 갈수록 상황이 좋질 않았습니다. 아내는 움직이는 종합병원이고, 나는 움직이지 못하는 종합병원이었던 셈이었죠(웃음). 이런 아내와 함께 병원에 가면 모두가 환자인 아내는 보호자이고, 보호자인 나를 당연한 환자로 판단해 씁쓸했던 기억도 많습니다.”

오랫동안 병원과 한의원 등을 전전했지만 그때만 반짝하고 효과가 있을 뿐 원래의 상태로 다시 돌아가곤 했다. 참 긴 세월이었다고 그는 기억하고 있다. 아내는 분가하고 나서 가족의 생계를 위해 배운 미용사 시험에 합격했다는 통지를 받고 너무 좋아서 심장에 이상이 생겼고, 그 후로 많은 고생을 했다. 이랬던 아내가 뜸을 뜨기 시작한 지 보름 정도가 지날 무렵부터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전성무 씨의 아픈곳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구당 선생님

병원 출입이 사라지고, 몸에서 온기가 느껴졌다
“아침에 일어날라치면 열 번도 더 엎치락뒤치락하던 사람이 거뜬하게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처음에는 일회성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내일 그리고 모레…… 계속해서 편하게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아, 이것이 바로 뜸의 힘이구나.’라고 감탄했습니다. 이 뿐이 아니고 얼음장 같던 아내의 몸에서 온기가 느껴졌습니다. 우리 식구들이 모두 신기한 표정으로 만져볼 정도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이러한 아내의 변화를 보면서 쌀알 반 톨만한 크기의 뜸이 이렇게 대단한 효과를 내는 데 자지러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아내는 뜸을 뜨면서부터 한 번도 병원에 입원하지 않았습니다. 그 전에는 며칠 혹은 몇 개월씩 입원했었는데, 이 얼마나 큰 변화입니까? 현대의학으로도 어찌 못했던 일들이 뜸을 뜨면서 없어진 것입니다. 구당 선생님에게 얼마나 고마움을 느꼈는지 모릅니다. 그런 분이 저희 부부 상태를 보시겠다고 이렇게 멀리까지 오셨으니 이보다 큰 영광은 없습니다. 정말 감사한 마음입니다.”

구당 선생님에 대해 고마움을 표시하는 그의 눈빛이 참 따뜻해 보인다. 그가 뜸으로 인해 일어난 아내의 변화에 대해서 말문을 열자 아내도 남편의 당시 상황을 얘기하며 뜸 예찬론으로 맞장구를 친다.

“구당 선생님 감사합니다”
“우리 집사람(이들 부부의 남편에 대한 애칭/아내가 아닌 집에 있는 사람이라는 뜻)은 뜸을 뜨면서 피곤하다는 말이 사라졌습니다. 또 몸에 염증이 많았었는데 완전히 없어졌어요. 집사람은 모든 행동이나 일을 앉아서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욕창과 티눈이 생기는데 뜸으로 모두 박살을 내버렸습니다. 한 번에 몇 십 장을 뜰 때도 있는데, 다음날 귀신이 곡할 정도로 호전이 됩니다. 이제는 화농성 질환이나 어지간한 피부병으로 병원에 가지 않습니다. 아시혈에 뜸뜨는 것으로 끝을 냅니다. 그뿐이 아니죠. 뜸은 정신과 육체를 동시에 호전시킨다는 사실을 많이 보고 느꼈습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누구나 쉽게 할 수 있고, 효과가 좋다는 무극보양뜸을 떠 주기 위해 뜸자리를 잡게 했다. 그러나 이제는 서로가 효과를 많이 보고 있다고 자랑한다.
“사실 저는 팔다리가 없어서 혈관이 없습니다. 주사도 제대로 맞지 못하는 몸 아닙니까? 그러나 뜸을 뜨면서 면역력이 높아졌음을 실감했습니다. 철이 바뀔 때면 어김없이 감기가 찾아오고, 피부병을 달고 살았는데 지금은 거뜬합니다. 뜸뜨기 시작한 그해부터 감기도 한 번 걸리지 않았고, 보시다시피 제 피부가 깨끗하지 않습니까? 아침에 아내가 뜸을 떠 주고 나면 명상을 합니다. 정신이 맑아져 오는 것을 저는 느끼고 삽니다.”


▲손을 쥐고 등을 토닥거리며 ‘당신은 뜸으로 인해 새롭게 태어난 사람인 게야’라고 위로하는 구당 선생님

재가(在家) 환자들에게 뜸은 최상의 치료제이자 예방약
남편이 뜸의 효과에 대해 얘기하자 아내가 다시 거든다.
“저는 뜸을 뜨면 차가웠던 몸에 불을 지피듯 따뜻해지고 맛이 있습니다. 남편도 뜸을 뜨면 정신이 맑아서 좋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남편 몸의 뜸자리는 무극보양뜸 자리 외에는 깨끗합니다. 움직이기가 쉽지 않으니 그때 외에는 뜸자리를 잡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뜸자리 잡으러 여러 번 봉사실에 갔기 때문에 뜸자리가 많아요. 오늘 구당 선생님께서 뜸자리를 잡아주신다니 평생 그 자리에만 뜸을 뜨며 살겠습니다(웃음).”

아내가 재치 있게 말을 이어가자 그도 금방 말을 받는다.
“저 같이 움직이기 어려운 재가(在家) 환자들에게 뜸은 그야말로 최상의 치료제이자 예방약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 누가 자신의 비법을 아무런 대가 없이 사람들에게 전파하겠습니까? 구당 선생님께서 치료한다고 소문이 나도 환자들, 가족들이 물밀듯 밀려올 텐데 뭣 때문에 저리 힘든 고초를 겪느냐는 말입니다. ‘뜸은 누구나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금까지 고생을 하고 계시는데 참으로 속이 상합니다. 나라에서는 나같이 팔다리가 없어도 쉽고 자유롭게 아내에게 뜸을 떠 줄 수 있는 것을 왜 못하게 막나요? 이것은 죄악입니다. 이것은 인간으로서 할 일이 아닙니다. 한마디로 이 나라가 국민의 아픔을 진정으로 알지도 못하고 있다는 얘기 아닙니까? 그런데 듣자 하니 장관도, 국회의원도 뜸을 뜨면서 일반인들이 뜸을 뜨면 법 위반이라 한다는데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저 혼자라도 국회나 정부에 가서 항의하고 싶습니다. 가만히 집에 앉아 범법자가 되니 이 얼마나 황당한 일입니까? 더군다나 외국에 가면 뜸은 자율이라는데 이런 빌어먹을 법이 어디 있습니까?”

“뜸은 우리 부부에게 구세주, “자유롭게 뜰 수 있어야 합니다”
전성무 씨의 말은 거침이 없다. 그러자 아내가 툭툭 친다.
“세상에 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시나? 반대하는 부류들의 힘이 국민보다 세기 때문에 그러겠지요. 우리도 뜸을 떠 주면 잡아가나요?”

그의 아내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세상에서 이것이 바로 불신의 벽이고, 위정자들의 말을 뒤돌아서면 믿지 않는 세태가 어찌 보면 그들 스스로 조장하는 것 아닌가 생각하니 씁쓸한 생각이 든다.
“설령 저를 잡아가도 아내에게 뜸을 떠 주겠습니다. 이제는 우리나라도 서로가 안고 살아갈 여유가 있지 않습니까? 국민을 위한다고 거짓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팔다리 없는 저도 뜸을 떠 줄 정도로 쉽고 효과도 너무나 좋은데 이것을 못하게 주장하며 방해하는 자들은 정신적인 장애가 있는 자라고 봅니다. 사지육신 멀쩡한 사람들이 뭐가 할 일이 없어 하지 못하게 방해한단 말입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합니다.”

뜸시술 자율화를 얘기할 정도로 이들 부부에게 뜸은 구세주처럼 다가왔다. 이제는 뜸이 없는 세상은 생각하기도 싫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얼마나 뜸이 좋았으면 밥이라고 하겠는가! 이들 부부가 뜸을 뜨면서 여러 병이 사라졌다. 아주 편하고 유쾌해졌지만 그 전에는 참 많이 아팠던 부부다.


▲입에 문 핀셋을 이용, 백회에 뜸봉을 올려 놓는 모습


▲백회에 올려놓은 뜸봉에 입에 문 선향으로 불을 붙인다.

고압선 사고, 팔다리를 모두 날려버리다
생각하기도 싫은 1979년 3월 4일 경기도 부천시 소사. 그날도 전성무 씨는 자신의 사업장을 개업하기 위해 막바지 전기공사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같이 일을 하던 사람은 즉사하고, 그는 손발이 까맣게 타 버릴 정도로 고압선(22,950볼트로 기억)에 의한 대형 사고가 터졌다. 겨드랑이가 터져 겨우 목숨을 건졌다고 한다. 그로부터 생과 사를 넘나드는 고통의 시간이 계속되었다. 입원실에서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힘겨운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3개월이 지나서야 의식이 돌아왔고, 병실로 옮겨졌다.

당시 그의 진단기록에는 ‘사망’이라고 적혀 있다. 지금이야 웃으며 말하지만, 누구도 그가 살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운명처럼 받아들인 사람이 있었다. 결혼도 하지 않았고, 연애하는 사이에 불과했던 스물넷 꽃다운 나이의 처녀 최우정(57) 씨. 사실 당시의 상황은 어느 누구도 그녀가 생사의 기로에 있는 전 씨를 버리지 않을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렇게 하는 것이 보통사람들의 당연한 선택이라고 판단했다. 팔은 모두 허공에 날려 버렸고, 다리 하나도 이미 자취를 감추었다. 남은 다리도 쓸모없이 오로지 다른 부위에 이식수술을 하기 위한 수단으로 남겨져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사단이 났다. 그녀가 그의 간호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모두가 그녀를 내쫓았지만 복도에서 새우잠을 자며 간호했다. 집안에서는 ‘애가 마쳤다’고 난리가 났다. 그것은 전 씨 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하물며 잠깐잠깐 정신이 돌아오는 그마저 매몰차게 돌아섰다.
정신이 들면 오직 한마디, “왜 살려! 죽여 줘, 제발.”뿐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돌아설 수가 없었다. 그녀가 돌아서면 그는 금세 죽을 것 같았고, 그 회한을 평생 가슴에 묻고 살기가 두려웠다.

팔다리 없어진 애인을 무작정 따라나선 순애보(殉愛譜)
일곱 번의 대수술을 하고 퇴원하는 그를 입은 옷 그대로 아무것도 챙기지 못하고 무작정 따라나섰다. 집에서 무엇을 챙겨 떠난다는 것은 언감생심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태어나 자란 고향 부천을 뒤로 하고, 낯설고 물 선 김제시 죽산면에서 그녀의 파란만장한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었다. 지금의 그녀는 “그때의 일을 후회하지는 않지만 내가 온전한 정신이 아니었나 봐요. 당시엔 나도 한 미모했는데……”라고 웃으며 말한다.

김제에서 그녀를 보는 눈은 이방인 그 자체였고, ‘언제 도망갈 것인가?’ 하는 것이 관심사일 뿐이었다. 시장에 가면 ‘이제 나가면 안 돌아오겠지.’ 사람을 만나러 나가도 ‘드디어 가는구나.’라고 수군댔다. 각오는 했지만 이렇게 살다가는 미쳐 버릴 것 같은 생각에 3년 만에 분가를 결심했다. 그러자 온 동네 사람들이 ‘가려면 그냥 가지, 분가는 무슨 분가.’라며 비웃었다.

세상은 이들 부부에게 호락호락하지 않았지만 하늘은 이들 부부에게 예쁜 딸을 선물로 주었다. 그제야 이런 수군거림이 사라졌다. 그 딸에게는 아직도 미안한 마음이 너무 많다.
“딸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제가 입원을 했습니다. 그것도 신경정신과 전문 병원이 김제에는 없었기 때문에 전주에 가서 한 것이지요. 팔이 없는 남편은 제가 없으면 아무 것도 입에 넣을 수가 없지 않습니까?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라야 할 때에 라면을 끓여 팔이 없는 아빠의 입에 넣어 주며 같이 울었다는 그 딸아이가 얼마나 애처로운지 퇴원을 하고 한달음에 집에 온 일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저를 울렸던 딸아이가 시집을 가서 외손녀를 낳았어요. 얼마나 대견한지 기뻐서 펑펑 울었습니다.” 당시를 말하는 최우정 씨의 눈자위가 벌겋다. 어찌 인생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 아니하겠는가?

환상통에 괴로워하는 남편
분가하면서부터 모든 생활의 책임은 그녀의 몫이 되었다. 이들 부부도 먹고는 살아야 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고, 아이들은 자라고 있었다. 식구들은 그녀만 바라보고 있었다. 끼니를 걱정하는 시간이 지속되었다.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포장마차에서부터 오락실, 소주방 등등 여러 일을 했다. 이웃 가게에서 불이나 그녀의 가게까지 홀랑 타버리기도 했을 정도로 고생을 안고 살았다. 모두가 그녀가 안고 살아가야 할 자신의 분신들이었기 때문에 요령을 부릴 틈이 없었다. 아이가 셋인 셈이었다. 큰 아이(?)가 남편, 둘째가 딸, 셋째가 되는 아들을 보노라면 아무리 힘이 들어도 이겨내기 위해 울음을 속으로 삼켰다. 이들을 위해 몸이 부서져라 일했다. 이렇게 독한 마음을 먹고 일을 했지만 그녀도 그저 평범한 인간이었다. 남편과 폼 나게 데이트도 하고 싶고,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살고도 싶고, 갈등이 오기도 했다.

분가하고 나서 외부와는 아예 단절하고 삼 년을 살았다. 혹시 알게 되면 수군거릴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산 삼 년의 세월이 이들 부부에게 정신적으로 가장 견디기 힘든 시기였다. 그녀는 이런 고통을 이겨내고 있었지만 남편에게 다가오는 각종 위험 증후군들이 더 큰 문제였다. 그러나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속수무책, 그저 열심히 살 뿐이었다.

남편에게서는 후천적 중도 장애인들이 가지기 쉽다는 증상들이 수시로 나타났다. 특히 팔다리에 대한 환상통(幻想痛 phantom pain 몸의 한 부위나 장기가 물리적으로 없는 상태임에도 있는 것처럼 느끼는 증상)이 그를 괴롭혔다. 그럴 때면 그의 입에서는 듣기 거북한 말들이 튀어나왔다. 모든 말이 욕으로 통할 때는 화가 치밀어올랐다. 그러나 “왜 날 살렸느냐”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노라면 억장이 무너져 내렸고, 참으로 애처로워 같이 울기도 많이 했다.


▲남편에게 뜸을 떠 주는 최우정 씨. 뜸자리가 선명하다.

‘왜 하필 나인가?’의 편협함에서 벗어나다
사실 그랬다. 몸이 예전처럼 정상이었다면 세상 살기가 한결 수월했을 거란 아쉬움으로 그의 몸은 늘 갈급해 있었다. 그러나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이 있었다. 사고가 나기 전이나 후나 기본적인 삶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은 문제의 핵심이 불편한 중도 장애인의 몸이 아닌 스스로 설정한 한계 때문이었고, 현재 상태에서 그의 가능성을 보지 못한 편협한 사고인 것을……. 내면에 그 해답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참으로 오랜 세월을 허비해야 했다.
남편을 지켜보던 아내의 힘들고 암울했던 기억을 어찌 필설로 다할 수가 있으랴마는 남편을 ‘남편이 아닌 아이’로 생각을 바꾸면서 조금씩 견뎌낼 수 있었다.

한편, 편협한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전성무 씨도 내면에서 답을 얻으면서 서서히 바뀌고 있었다. 어차피 스스로 죽을 수도 없는 몸인데 가족들에게 더 큰 피해는 입히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때가 대략 16년 전으로 기억한다.

“어느 날 스님 한 분이 찾아와 얘기하는 중에 ‘내 몸이 내 것이 아니다.’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죽는 방법만을 생각하며 살던 나에게 이 말은 비수처럼 가슴에 꽂혔습니다. ‘왜 내 몸이 내 것이 아닐까?’ 하는 자신에 대한 물음에 답을 얻기 위해 책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까지 나는 ‘왜 하필 나인가?’, ‘열등감’, ‘자책과 자괴감’, ‘타인의 눈초리’에서 벗어날 수 없는 자학의 결정체였습니다. 그러나 ‘내 몸이 내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이해하기 위해 책을 보고 명상을 했습니다. 나를 버리고, 모두를 버리는 방법을 조금씩 알아가는 기쁨이 참 좋았습니다. 가슴에 있던 커다란 돌덩이가 날아가는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정신과 육체가 편안해지자 마음이 열렸습니다. 아내에 대해, 가족에 대해, 주위의 시선에 대해 열린 마음이 되어 갔습니다. 대화가 있게 되고, 피하던 사람들에게 말을 편하게 하기 시작했습니다. 불면증에서 해방이 되고, 인생의 갈증을 점차 풀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눈을 감고 하늘을 봅니다. 그 상태에서 별들을 봅니다. 그렇게 2~3시간을 별들과 교감을 합니다. 스르르 잠이 옵니다. 5~6년 동안 끊임없이 노력하다 보니 이제는 불편함이 없습니다. 감사할 뿐입니다.” 이렇게 그는 스스로가 걸어 놓았던 모든 족쇄에서 벗어나 이제는 편안함을 즐긴다.


▲어떤 손님에게도 ‘앉아서 인사한다’며 취재진에게 웃음을 주는 전성무씨

뜸이 있어 행복하고, 서로가 스승이라는 부부
요즈음의 이들 부부는 ‘서로가 스승입니다’라는 말을 달고 산다. 하루 세 번 밥을 챙겨 주는 아내가 애처로워 두 번으로 줄인 것이 이제는 일상의 생활이 되었다. 이것도 아내가 없었으면 시행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하며 웃는다. 이것뿐이 아니다. 새로운 일을 벌일 때도 남편의 말을 따른다. 그래야 일이 잘 된단다. 그러니 스승이 아니냐며 활짝 웃는다.

이들 부부는 서로가 스승이라고 하지만 닮은 점도 많은 부부다. 철없던 시절 시어머니 도시락 반찬에 싼 ‘고등어 대가리’ 때문에 일어났던 일화를 MBC 문화방송 ‘앗, 나의 실수’라는 프로그램의 생활수기에 응모해 1등으로 당선돼 당시로는 대형인 29인치 TV를 수상했다. 부창부수가 따로 없다. 아내가 방송으로 위세를 떨치며 장군을 부르자 남편도 멍군을 했다. 소문난 부부사랑이 금방 표시가 났다.

전주 MBC-FM ‘김차동입니다’란 프로의 전화 퀴즈대회에서 5연승을 한 그가 DVD를 수상한 것이다. 거기다 한술 더 떠 전북 장애인 복지관에서 열린 퀴즈대회 ‘장애인 골든벨’에서 200명 참가자 중 준우승을 차지해 상금을 받기도 해 남편 스승이 한 수 위라고 깔깔대며 웃은 적도 있다. 그의 아내는 말한다. ‘뜸을 더욱 깊이있게 배우고 싶은 꿈이 있다.’라고…….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받은 것 다는 돌려주지 못해도 반드시 봉사하는 생활을 할 것’이라고 말한다. 또 있다. ‘남편과 부부 싸움을 해도 한 번도 맞은 일이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그리고 밝게 웃는다. 아내를 바라보던 그는 어이가 없다는 듯 웃고 만다. 이 가정에 이렇게 웃음이 있다. 그 언저리에 뜸이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외손녀를 안아 주고 싶다. 그러나 마음뿐이다. 예전 같으면 고통이었겠지만 이제는 바라보는 것으로 벌써 외손녀를 꼭 안아 주고 있어 힘들지가 않다. 환상통이 그를 괴롭히고, 아내의 고통이 가슴을 저며 와도 어쩌지 못했던 그 아픔들을 마음을 열어 다스리고, 생각하지도 못했던 뜸으로 치유하면서 집안에 웃음꽃이 핀 것이다. 그의 눈길이 참 애잔해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보는 사람의 느낌일 뿐, 그는 넉넉한 마음으로 세상을 살고 있다.

‘참, 세상은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지 않습니까? 만나기가 불가능할 것으로 알았던 구당 선생님께서 손수 찾아와 우리 부부를 치료해 주었습니다. 난 이것으로 만족합니다.’ 그가 떠나는 기자를 바라보면서 가슴으로 전하는 말이다.(김제 = 합동취재단)

팔다리가 없어도 입으로 아내에게 뜸을 떠주고, 자신도 뜸을 떠 건강을 유지하는 전성무 씨 부부의 애틋한 인생 이야기에 대한 여러분의 의견을 듣습니다. 독자 여러분이 보내주시는 진솔한 의견은 뜸사랑을 위한 귀중한 자료로 쓰이게 될 것입니다.

(이메일 gudang01@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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